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문단 편집) === 소련군의 작전 규모 확대 === 한편, 1월에 시작한 하르코프, 로스토프에 대한 공세가 성공적으로 돌아가자 스탈린과 스타브카의 기대는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군 후방을 향한 과감한 진격으로 남부집단군이 붕괴 직전 상태에 이르는 것처럼 보이자, 스타브카는 토성 작전의 목표를 훨씬 거대하게 만들어 그 대상을 독일 중부집단군까지 확대한다. 스탈린과 주코프는 지난 2월 2일, 스탈린그라드의 독일 제6군이 항복하자 해당 방면에 묶여있던 병력들을 즉시 재배치시켰다. [[콘스탄틴 로코솝스키]]가 지휘하는 돈 전선군 사령부와 예하 소총군 중에 제65군, 제21군이 새롭게 편성된 제2전차군, 제70군과 합류하여 보로네시-리브니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받았으며 돈 전선군은 중부 전선군으로 개칭되었다. 제16항공군과 제2근위기병군단도 이 지역으로 재배치되었다. 나머지 돈 전선군의 제24군, 제64군, 제66군은 스탈린그라드 지역에서 재편성을 거치고 바투틴이나 로코솝스키의 명령에 따라 어디에라도 투입되기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확대된 별 작전은 독일 중부집단군에 대해 연속적으로 3개의 공세 작전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다. >1단계: 2월 12일에 서부 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이 협격하여 오룔 돌출부의 독일군을 포위. >2단계: 2월 17일에서 2월 25일 사이에 이들 2개 전선군이 새롭게 투입된 중부 전선군과 조우하여 브랸스크 일대의 독일군을 일소하고, 데스나 강을 넘을 공고한 교두보를 확보. >3단계: 25일에서 3월 중순 사이에 칼리닌 전선군과 서부 전선군이 스몰렌스크를 점령하고, 남쪽의 이웃 전선군과 협동하여 르제프-뱌지마 돌출부의 독일 중부집단군을 섬멸. 이 모든 공세들은 보로네시 전선군과 남서 전선군의 승전 시기와 맞아떨어지도록 조정되었다. 이런 작전에 근거해 소련군은 3월 중순에 드네프르 강 서쪽까지 진출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획과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로코솝스키의 충격 집단은 재편성에 불과 6일의 시간밖에 배당받지 못했고, 새로운 지역으로 공세를 준비하는 데 5일만 받았다. 제2전차군과 제2근위기병군단은 이미 리브니 지역에 집결해 있었으나, 제70군은 겨울의 러시아 도로를 200킬로미터 이상 이동해야 했고 제21군, 제65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철도, 도로를 통한 장거리 이동을 감행해야 했다. 게다가 초봄의 눈과 [[라스푸티차]]가 수시로 발생해 집결지에서 공격 예정지로 이동하는 도로조차 심각한 상태가 되어있었고 스탈린그라드로부터 북쪽으로는 오직 단선의 철도선 하나만 존재했기 때문에, 위의 계획일정은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로코솝스키도 이 계획에 반대를 표시했지만 별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애로사항 때문에 중부전선군은 2월 25일 당일에도 제2전차군과 제65군은 철도 하차점에서 공격 집결지로 이동 중이었다. 2월 22일, 중부 전선군이 전선배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브랸스크 전선군은 작전대로 제13군, 제48군으로 공세를 개시했다. 이들은 독일 제2기갑군의 우익을 공격했고, 동시에 바그랴먄 중장 휘하의 제16군이 지즈라 북쪽에서 독일 제2기갑군의 다른 측면을 공격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날씨와 독일군의 교묘한 방어로 바그랴먄의 진격은 방해를 받았다. 2월 24일까지 서부전선군과 브랸스크 전선군의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 2월 25일, 로코솝스키는 로딘의 제2전차군과 바토프의 제65군을 선봉으로 내세워 공세에 착수했다. 타라소프 중장의 NKVD 요원으로만 구성된 정예 부대, 제70군과 치스차코프 중장의 제21군이 도착한 즉시 공세에 가담했으나 전력이 완전 집결하지는 못했다. 제70군, 제21군의 병력 상당수가 진흙탕으로 변한 도로에서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행군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부전선군의 성과는 위의 두 전선군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제13군의 우측면 엄호하의 제65군은 독일군 방어선을 뚫고 후방으로 진격했다. 로딘의 제2 전차군과 기병-소총병 집단은 세프스크를 통과하여 노브고로드-세베르스키를 향해 빠르게 서진을 계속했다. 3월 1일, 이 때까지도 로코솝스키는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북쪽으로는 독일 제2기갑군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남쪽으로는 독일 제2군의 측면을 위협했다. 제79군은 전방으로 추진하여 바토프의 우익에서 전열에 합류했으며, 독일군 후방 깊숙한 오룔과 브랸스크로의 진격을 노리고 있었다. 3월 7일, 크류코프의 기병-소총병 집단은 로브고로드-세베르스키의 외곽에 도달하게 된다. 이로서 독소전 전체의 동계 전역을 통틀어 붉은 군대 최고의 진격을 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련군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이 이미 만슈타인의 낚시바늘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